황혼을 아름답게
한 용 유

내 나이 올해 세는나이로 89세다.(호적상으로는 88세)
군대생활 3년. 공직 30년. 약품상사 3년 건설회사 8년을 거쳐 은퇴 노인이 된지가 20여년이 흘러갔다. 처음 정년퇴임 할 때 정년이 만 53세(세는 나이로 55세)로 큰애가 대학 3년 둘째가 대학 1년 막내 딸애가 고삼(高3)이었다. 재직 시는 아이들 학자금 대여도 있었고 적은 보수지만 근검절약으로 그럭저럭 살아 왔는데 막상 50대 중반에 정년을 맞고 보니 앞으로 살 길이 막막했다. 아이들의 교육비 등 가장 생계비가 많이 들 때다. 다행이 퇴직 후 인척의 연으로 약품상사 3년 건설회사 8년 등으로 아이들의 학업을 마칠 수 있었고 결혼까지 시켜 각각 자립을 하게 되었으니 그동안 고생한 일 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만감이 교차된다. 재직 시에는 먹고 살기 위해 직무에 전념하느라 나를 돌볼 시간은 거의 없었다. 오직 앞만 보고 달렸다. 다행이 반액의 20년 연금이지만 그기에 참전유공자 수당을 더하게 되어 부족한 생계를 도와주고 있으니 경제적으로 넉넉하지는 못해도 큰 불편 없이 우리부부 노후를 보내고 있고 삼남매 모두 제 나름대로 독립해서 살고 있어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 고진감래(苦盡甘來)란 이를 두고 하는 말 같다.

이제 인생 100세 시대가 닥아 왔다. 고희(古稀)는 사전에서나 찾아보게 되고 인생은 70부터라고 한다. 내가 겪어보니 공직 30년에 건설회사 등 40여년을 60대 중반까지 직장에 메여 있었으니 인생은 70부터 라고 하는 말이 맞는 말 같다. 나는 70대가 가장 즐겁고 행복 했다. 늦게나마 컴퓨터도 배워 한글 워드는 물론 엑셀 파워포인트에 디지털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편집하여 친지에게 메일로 보내고 수필문학회에 가입하여 글쓰기 공부도 하며 지난해에는 수필과 회상록을 적은 “먹구의 푸념”이란 수상집도 발간했다. 그리고 복지회관에 나가서 자원봉사단에 가입 자원봉사도하고 새벽 산책길 쓰레기 줍기 로 주민의 추천으로 달성군수의 모범 군민 상 까지 받기도 했다. 요가도 하고 컴퓨터도 익히고 탁구도 치면서 그야말로 행복한 70대였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오기로 의기 양양 했었다.

그런데 80대에 들어서고 4년 전 부터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이 전과 달라졌다. 위 내시경, 초음파검사, 대장정밀 검사 등 종합검진을 했다. 암 등 기질적인 병변은 볼 수 없으나 노쇠로 인한 위벽의 위축으로 소화기능이 약해졌다고 했다. 금주 금연 소식과 꾸준한 운동으로 마음을 항상 즐겁고 긍정적으로 가지는 게 건강 보전의 상책이라 했다. 술과 담배는 끊은 지 오래 이고 소식은 받아주지 않으니 자연 적게 먹을 수밖에 없고 다만 이 때 까지 계속해 오던 산책과 요가운동에 더 치중키로 했다. 그리고 더 이상 노추를 보이기 싫어서 복지관에도 안 나가고 수필모임 외는 일체 다른 모임에는 안 나가고 칩거하고 있다. 다행히 귀는 어두어도 눈은 밝아 독서로 무료를 달리며 신문은 일기장에 스크랩 메모를 하면서 빠짐없이 다 읽는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오만이 나이에는 장사가 없다는 말로 뒤 바뀌게 되어 무상을 새삼 느끼게 했다. 수필모임은 나에게 글쓰기 공부로 책을 내게 도와주었고 연금은 나에 게 평생을 먹고 살게 하는 밥줄이며 종사참여는 나의 뿌리를 찾게 하는 근본으로 퇴직 후 그동안 소홀했던 종사에 참여하고 있다. 영모당 건립 인터넷 족보 구축 유계문집 국역 참여 등으로 종인의 인정을 받아 문장(門長)으로 추대되어 세의(歲儀)를 받고 있다. 문장(門長)은 일문의 어른으로서 그 대표자이며 문장의 선임은 항열(行列)이 가장 높고 대수가 종조에 가까운 사람으로 한다고 종규에 규정되어 있다.

임진왜란 때 성주에서 피란 정착한곳이 지금의 경산 백양 골 이란 내 고향이다. 대구에서 20km 동쪽이다. 4백여 년간 대대로 이어오던 고향마을이 택지개발에 편입되어 아파트단지로 조성되고 종산 일부도 들어갔으나 산천재 재실만은 그 자리 에 남아 옛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입향조님 이하 500여 세대에 2천여 명의 후손이 경향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다. 여기에 내가 문장으로서 종중의 제일 어른으로 대접받고 있으니 이 얼마나 자랑스럽고 영광이 아닌가.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가 거동을 할 수 있는 한 참여를 계속하고 있다. 복지회관에 나갈 때는 자원봉사원에 가입하여 봉사 활동도 했으나 이제 복지관에도 안 나가니 다른 할 일은 없고 내 집 앞 골목 청소는 내가 도맡고 있다. 그리고 새벽산책 시 비닐봉지와 집개를 휴대하고 앞산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면서 쓰레기 줍기를 하고 있다. 인간 오복 중에 죽음의 복이 으뜸이라 했는데 이제 고종명(考終命)을 어떻게 마무리 하는가가 나의 남은 유일한 바램이다. 증손주를 본지 만 7개월이 지났다. 인생은 마라톤이며 불로초라 했다. 돌아갈 채비는 다 했으니 황혼에 노을 지듯 아름답게 돌아가고 싶다. 천상병시인의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나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 하리라”를 뇌이며 기죽지 않고 살리라.

그리고 수상록 1집에서 빠진 글과 틈틈이 써 모은 수필 125편, 종사관계 글 24편, 편지글 11편. 총 160편을 USB 에 저장해 놓았다. 九旬 기념으로 제2의 수상록을 낼 계획이다.
天壽88 234 !!!

2019년 9월 8일 愚聾 한용유 씀